누구를 또는 무엇을 좋아한 기억은 흔하다.
어릴적 일년가까이 용돈을 아껴 마련한 나이키 운동화가 그랬고,
지금은 때 맞춰 피는 정원의 꽃이 그렇다.
어릴적 형편에 나이키 운동화는 정말이지 둔한 나의 운동신경을 만회해줄 것이라는
욕망의 돌파구같은 존재였었다, 물론 이제는 흔해빠진 것이 되어 버리기도 했지만,
50이 훌쩍 넘은 나이에서 나이키 운동화는 별다른 감동도 자랑스러움도 없다.
오히려 정원에 흐드러진 데이지 꽃이 나를 기다리게 하고 흥분되게 한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해 간다.
봄부터 가을 까지의 정원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게 할 정도로
좋아하고 아끼는 것이지만 겨울이 되면 관심에서 멀어진다.
좋아한다는 것은 그렇게 조금은 이기적인 것이 아닐까 한다.
그때의 모습과 상태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운동화와 정원에 가득한 꽃들이 그렇듯 소중하고 화려하고 좋아 보이는 시기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아무리 좋아했던 운동화도 낡아서 헤지고 더러워지면 버리게 되고,
아무리 화려하고 향기롭고 예쁜 꽃이라도 시들어지면 관심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럼 사랑하는 것은 어떨까?
누구도 이의를 달거나 부정하지 못하는 사랑이 있다면 부모의 자식 사랑이 아니겠는가?
갖 태어나 신비로움과 안타까움을 자아내던 모습과, 이제는 어른이 되어 인격체로서의 독립적 결정권을
주장 하지만 경제적 도움은 요구하는 이기적인 자식을 다르지 않게 사랑한다.
부활한 예수님은 베드로를 찾아가 세번을 반복하여 물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을 세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세번을 물어본 예수님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까?
어찌보면 귀여운 복수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베드로는 예수가 죽기 전까지는 사랑한 것이 아니라 좋아 한것은 아닐까?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예수는 좋아하지만 로마 군병에 잡혀 혹여 자신에게 불똥이 튈 수 있는
상황에서는 좋아할 수 만은 없지 않았을까?
좋아 하는 것은 상황과 시간에 따라 부인하거나 외면 할 수있다.
그러나 사랑은 부모가 자식이 어떤 상황과 시기에도 염려와 관심과 희생을 멈추지 않듯,
상황과 시기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좋아하는 것을 지나 사랑하라고 세번을 반복 질문하신 것은 아닐까?
무언가를 좋아 했는데 어느 순간 기대와 다르면 실망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또 변하지 않을 것을 믿었는데 점점 변해가는 모습은 우리를 실망하게 한다.
그리고 내곁에 항상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때 실망하게 된다.
베드로의 세번 부정은 이 세가지의 실망의 결과일 것이다.
예수님은 다시 베드로를 찾아와 세번의 같은듯("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 다른 질문을 하신다.
네가 나의 진짜 목적을 알겠는가?(권력의 왕이 아닌 구원의 길로 오신)
네가 나의 방식을 이해 하겠는가?(군림이 아닌 희생과 순종의)
너의 곁에 영원히 함께하는 존재를 알겠는가?(하나님도 이 땅의 양(성도)들도)
베드로는 아마도 이 세가지의 질문의 의도를 알고는 그렇다고 답한 듯 하다.
"내 양을 먹이라"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자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것에 그치지 않고 만들어 주려는 노력이다.
그자식이 행복할때 부모는 그 상황이 기쁘고 영광 스럽다.
예수님이 기쁘고 영광받는 것은 이땅의 성도들이 모두 구원(행복과 영생)에 임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태초에 만드신 에덴의 목적이기도 했다.
우린 누구나 좋아하는 것을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내를 사랑해서 결혼 했다고 믿었다.
얼마간의 결혼생활 속에 내가 생각(기대)한 것에 미치지 못하는 아내를 보며 실망했고,
나이가 들면서 변해가는 외모와 태도에 실망했으며,
아내가 나를 떠날 수도 있다라는 것에 좌절했었다.
하지만 아내 나름의 삶의 목적이 있음을 알게되고,
또 그삶을 사는 아내만의 방식 또는 스타일이 있음을 알게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행복과 생명을 바라고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은
변하지 않음을 알게되면서 나는 비로소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이 나쁜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과정을 지나 사랑하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에 이르지 못한채 좋아 하는 것은 정욕이다.
사랑에 이르지 못한 채 좋아만 하는 것을 예수님은
"사단아 뒤로 물러가라 네가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 하는 도다" (마16:23)
라고 표현 하셨다.
사랑하지 않고 좋아 만 하는 것은 그와 나를 넘어지게 하고
천국이 아닌 지옥에 들게 하는 것이다.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Feed my sheep)"
먹이기 위해서는 땀을 흘리는 수고로움 즉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 대상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다.
예수가 십자가를 피하지 않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