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럼 예수님이 먼저 구하라 하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과연 무엇일까?
요4:46장 이하에 등장하는 "왕의 신하" 의 행동을 보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구하라 하신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가늠할 수 있을 듯 하다.
"왕의 신하"가 예수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자 예수님은 표적이 없으면 믿지 않는다는 힐난을 한다.
하지만 신하는 그 힐난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죽기전에 내려와 달라는 부탁을 반복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 아들이 살았다" 고 말 하고 이에 그 신하는 그 말을 믿고 집으로 돌아 가는 것이다.
그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천국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과 예수님의 존재를
그리고 능력을 인정 한다는 것이 아닐까?
만약 내가 천국을 구하고 천국에 있다면 구하던 그 모든 필요가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오랜기간 교회를 출석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민감한 사안 또는 어려운 상황이 일어나면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를 믿기 보다는 불평과 더불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돌려 놓으려 애써 왔다.
하나님 나라는 물리적이지 않으며 모든 상황 또한 하나님의 나라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들이 아프자 예수님을 찾은 신하 그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까?
그 당시에도 분명 의사가 존재 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무당을 찾아 비는 시대 였다.
그 모든 수단을 뒤로 한채 신하는 예수님을 찾은 것이다.
"그의 나라"를 구한 것이다.
또한 그는 "네 아들이 살았다" 하는 에수님의 말씀에 아무런 의심이나 의문을 갖지 않았다.
분명 그는 예수님에게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아들을 고쳐달라고 요구 하였었다.
"네 아들이 살았다" 라는 단 한마디에 그는 다른 의심과 요구 없이 돌아섰다.
성경에는 믿음의로 의롭게 된다고 말씀 하신다.
그런 신하의 행동에 예수님은 그의 필요 즉 아들의 회복이라는 기적을 베푸신 것이다.
다시 한번 마 6:33의 말씀을 되새겨 볼 때이다.
나는 하나님(그)의 나라를 어떻게 구했는가?
시험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였는가?
나는 하나님(그)의 의를 어떻게 구했는가?
이해 할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는가?
누구나 마찮가지로 의, 식, 주에 대한 걱정을 하고 산다.
아무리 부자여도 그 걱정에서 자유롭지 않다.
걱정을 하지 않려면 하지않기 위해 또 걱정한다.
내가 처한 모든 환경과 상황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
말씀을 온전히 믿는 것도 또한 쉽지 않다.
하지만 인정하고 믿기 위한 고민과 걱정은 다른 걱정과 다르지 않은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