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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從)"에 대한 생각

brainstorm 2025. 5. 7. 01:02

여느 믿는 가정이나 사업장에 가면 많이 볼수 있는 성경구절이 있다.

주의 은혜로 종(從)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라는 구절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일까?

아니면 자녀일까?

오랜 기간을 이 두 가지의 신분을 두고 혼란이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탕자의 비유로 내가 비록 종이 되는 것도 감당치 못할 만큼 큰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환대와 용서로 자녀라는 신분이 되는 것을 보며 이든 "자녀"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나

생각이 중요치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이끄는지가 중요 하다" 라고 나는 생각 하게 되었다.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께 원한 "종"이라는 사람(직분)에 대해 생각 보려한다.

종 이라는 단어를 사전적으로 보면 여러 뜻이 있으나 그 여러 의미를 함축적으로 설명하면

종은 자신의 목적이 아닌 주인의 목적을 위해 사는 사람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6명의 종을 살펴 보면 우리가 어떠한 종의 삶을 살아 갈 때

우리의 주인 이신 하나님의 목적에 맞는 삶이 되는 것인지 유추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열왕기하" 5장에  아람 장군 나아만의 종들과 엘리사의 종(게하시) 이 등장 한다.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의 집에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어린 계집종이 있었는데,

이 계집종이 선지자에게 가면 치료받을 수 있다고 말해 준다.

이 어린 계집종은 포로로 잡혀왔으니 그녀의 마음속에는 자기를 포로로 잡아 온 아람 사람들과

자기를 노예로 부리는 나아만 장군은 자기 삶을 망가뜨린 원수들 이며 증오의 대상 일것이다.

그런데 이 어린 소녀는 그런 원수에게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는 선행을 베푼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실천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하찮은 여종의 말을 증폭시켜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

즉 왕에게 까지 보고가 되는 일 이 벌어지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나아만은 선지자 엘리사의 집 앞에 도착해 엘리사가 자신의 병을 기도로 고쳐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데 엉뚱하게도, 또 다른 종 즉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나타나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어 버린다.

글에는 감정이 잘 나타나지는 않지만 나아만의 반응을 보면 게하시가 어떤 말투로 엘리사의 말

즉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는 말을 전달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게하시는 엘리사선지자의 여러 기적을 목격하고 일정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 사람이었다.

수넴 여인에게 아들이 태어나게 한 것, 그리고 그 아들을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게 한 것, 

과부의 기름종지 사건, 보리떡 20개로 무리를 먹게 한 사건 등 기적의 현장에 함께 했던 사람이 바로 게하시 였던 것이다.

그런 게하시 라면 나아만이 노하여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설령 나아만이 엘리사가 직접 자기를 위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섭섭하게 생각 할 지라도,

수많은 기적들을 설명하면서 요단강에서 몸을 씻도록 권면하고,

필요에 따라 자신이 직접 안내하고 도우는 것이 마땅하였을 것이다.

먼저 은혜를 경험한(믿음의 선진 또는 직분자들) 이들의 말은 무척 중요한 것이다.

그들의 말 한마디가 나아만 같은 새 신자를 분노케 하여 떠나게 만들 수도 있고

아름다운 권면과 섬김으로 충성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할 수도 있다.

이렇게 화가 나서 돌아가는 나아만 에게는 다행히 아주 아름다운 종들이 있었다.

엘리사를 찾아 온 원래의 목적을 환기 시켜주는 종들이다.

이전에도 아람 왕에게 선지자가 병을 고친다는 말이 보고되자 일이 좀 이상하게 흘러간 전력이 있다.

아람 왕이 병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를 써, 나아만 장군의 병을 고쳐 달라는 바람에

선지자가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한 계집종의  말이 어느 샌가 병 고침이 아닌 의전이 더 중요한 외교행사로

변질 된듯한 모양새가 되었고 이는 전쟁발발의 오해까지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본질을 망각하고 허례에 집착하는 인간들의 실수는 끊이지 않는 듯 하다.

다행히도 나아만의 종들은 병을 고치기 위해 더 힘든 일도 하지 않았겠냐며 주인을 설득 하였다.

사실 이런 광경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은, 당사자 보다 주위 사람들이 더 흥분하며,

우리를 무시하고 있다며 당장 군대를 일으켜 혼쭐을 내 주어야 한다며 불 난 집에 부채질을 해서

사태를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가버리는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종들의 현명한 조언에 나아만 장군도 그 뜻을 수용하면서 본래의 목적 즉 병 고침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게하시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엘리사의 말을 정확히 전달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뉘앙스로 말했느냐에 따라 듣는 이로 하여금 분노에 놓이게 하거나

이해함을 얻게 할 수도 있음을 간과 혹은 무시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게하시가 어떤 투로 말했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것이 이 사건의 말미에 나타나게 된다.

엘리사는 병 고침을 받은 나아만이 내놓은 예물을 거절 하였다.

이는 나아만이 단순히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하나님의 계획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 된다.

성경 본문에 보면 나아만도 그런 의지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하시는 그런 엘리사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나아만을 뒤쫓아 가서 의복 두벌과 은 두 달란트를 받아내었고,

그 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나아만의 병이 자기에게 오는 스스로의 재앙을 만들고 만다.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내 마음(mine heart)을 몰랐느냐 라고 질책 한다.

게하시는 엘리사의 방법과 하나님의 계획을 망쳐버린 것이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주위를 섬기고 있을까?

회사에서 일을 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정 회사를 위하는 일인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게하시처럼 하나님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 하건데라고 말 하지만 정작 하나님과 회사의 의도에

반하여 개인의 욕심을 위해 일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를 점검 해봐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세 명의 종이 있다.

먼 길을 떠난 주인과 각각 다섯, , 하나의 달란트를 받은 종들의 이야기다.

다섯과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이윤을 남겨 주인에게 칭찬을 듣게 된다.

주인이 달란트를 맡긴 의도를 잘 파악하고 그 의도에 맞게 행동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겐 충성된 종이 라는 명예와 함께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는 물질적 보상도 함께 주어 졌다.

문제는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인데,  이 종은 땅 속에 뭍어 두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내어 놓으며 말 하기를 

"당신은 굳은자입니다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주인이 노하여 말 하기를.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나를 오해 하였다. 나 또한 여느 사람과 같이 심은데서 거두고, 헤친데서 모으는 사람이다

너에게 준 한 달란트 마저 빼앗아 이미 가진 자에게 주고, 너를 어둠에 내어 쫓아 이를 갈게 하겠다" 고 하였다.

이 종은 주인이 굳은자 즉 융통성이 없고 종의 사정을 살필 줄 모르는 자로 오해 하였고

심지 않은데서 거두는 즉 아무런 절차와 노력의 과정 없이 그냥 주인이 된 것으로,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즉 어려움 없이 모든 것을 이룬 사람으로 오해 한 것이다.

이 종이 달란트를 맡기는 주인의 의도를 알지 못하였다면 마땅히 주인에게 물어 보았어야 했다.

장사하는 법을 모르고 있다면 그 또한 주인에게 도움(가르침)을 요청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물어보지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 업무를 처리한 채, 주인의 의도와 전혀다른 결과물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 종이 열심히 노력 했지만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돈을 다 잃어 버렸다면 주인의 반응은 어땠을까?

이런 상황은 회사를 비롯한 많은 조직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PLAN"A" 와 PLAN"B"를 면밀히 검토하고 불확실성에 대비 하였고, 이를 "보고" 했는지가

실패에 대한 평가의 중요한 잦대가 된다.

검토와 보고의 과정에서 권위자의 조언과 교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이 실패는 불가항력으로 판단 될것이다.

임원 심지어 사장도 신입사원 시절이 있었고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한 후 현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입사원들은 그들이 자신 같은 신입사원의 마음을 모를 것이라 오해한다.

자신에게 닥친 이 어려움을 그들은 격어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 하며, 또 주어진 업무의 의도를 무시하고,

회사 또는 조직이 원하고 의도하는 것과 다른 과정을 거쳐 나쁜 결과를 내 놓고서는,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회사가 알아주지 않는다며 투덜거리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종에게 주인을 통하여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말씀하신다.

게으른 것은 인정 하겠는데 왜 악하다 하실까?

게하시의 행동과 같이 의도를 무시하고 하는 모든 일은 애초에 기대 했던 결과와

전혀 다른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 내거나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하나님의 계획 또는 회사의 계획을 파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모든 일에는 의도가 있는데, 그 의도를 파악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악(惡)"한 것이다.

우리가 사회생활 즉 회사에서 일하거나 성도로서 교회를 섬기는 것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도를 아는 것이다.

모두에서 말한 것 같이 종은 나의 의도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의도에 따라 사는 사람을 말 한다.

우리가 주인의 의도를 잘 파악한 다섯과 두달란트를 받은 종, 그리고 여종과 같이 원수를 사랑하고 나아만의 종처럼 주위를 세우고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산다면 다윗의 기도와 같이 종의 집은 하나님의 복을  영원히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