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경영

[스크랩] 하워드헨드릭스의 책에서

brainstorm 2007. 4. 19. 10:31
 

하워드 G. 핸드릭스의 <제1장 교사의 법칙>

 

  능력있는 교사는 언제나 충만한 삶을 통해 가르칩니다. 교사의 능력의 법칙에 대하여 기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 성장하기를 멈춘다면, 내일 가르치기를 중단하게 될 것이다.'

  인격이나 방법론은 이러한 원리에 대체될 수 없습니다. 모르는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을 나누어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어떤 것도 결코 가르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법칙에는 교사로서의 나는 먼저 배우는 자, 즉 학생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철학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나는 배우는 과정을 끊임없이 지속하고 잇고, 지금도 배우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리고 교사로서의 내가 다시금 학생이 됨으로써 근본적으로 새로운, 그리고 독특하고 개인적인 안목으로 배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장하고 변화하는 일을 계속해야만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변하는 것은 신앙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베드로는 그의 둘쩨 서신 마지막 절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3:18)

  이러한 인생관은 당신 자신이 아직 완전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라는 마음의 자세를 필요로 합니다. 가르침에 대한 이러한 원리를 적용하는 사람은 언제나 '내가 어떻게 하면 향상될 수 있을까?"하고 자문합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사는 한 언제나 배우고, 내가 배우는 한 항상 살아 있다."


  나는 대학 시절 구내 식당에서 일하였는데,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식당으로 일하러 가는 길에 한 교수님의 집 앞을 지나다니곤 하였습니다. 새벽마다 나는 그 집의 창문을 통하여 교수님의 책상위에 불이 켜져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시간을 이용하여 공부하기 위해 밤 늦게까지 도서관에 있다가 10시30분이나 11시쯤에 집으로 돌아올 때도 나는 그 교수님의 책상에 불이 켜져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그 교수님이 나를 점심 식사에 초대하였는데, 식사 후 나는 "교수님께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물론 해도 되지" "교수님은 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십니까? 교수님은 공부를 끊임없이 하는 것 같아요."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은 격언을 인용해서 답변해 주셨습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괴어 있는 연못물보다는 차라리 흐르는 시냇물을 마시게 하겠네."

  그는 내가 일찍이 만났던 훌륭한 교수님들 중의 한 분으로, 나에게 늘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무엇을 마시고 있습니까? 그들은 연못에서 마시고 있습니까, 아니면 흐르는 시냇가에서 마시고 있습니까?

  누가복음 6:40 후반절에는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수년간 복음서를 읽어 왔으면서도 이 말씀을 결코 주의해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말씀을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되 철저히 변화시켜 주시기를 구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당신은 어떠합니까?



  누가복음 6:40에 나오는 그 원리가 여러분에게 흥분한 만한 가능성을 제시합니까, 아니면 두려워할 만한 조건을 내세웁니까? 그 말씀이 어떻게 느껴지든 간에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돌보아주기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당신을 도와 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하여 역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당신 안에서 역사하실 때까지는 당신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그 도구가 자기의 손에서 더욱 효과적인 도구가 되도록 예리하고 정결하게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의 인격은 효과적인 가르침의 수단이기 때문에 이 모든 사실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그러한 이유를 설명하도록 요구하지는 마십시오. 나는 그러한 사실을 경험할 수 있음에 대하여 다만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이러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 당신이나 나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인 도구들을 사용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우리를 택하여 일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사역 중 하나는 우리를 이 세대에서 자신의 대언자들이 되도록 선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변화를 일으키기를 원하시며, 그렇게 하심으로써 당신은 그 분의 중요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이 책을 읽는 분명한 이유가 좀더 효과적인 가르침, 즉 삶을 변화시키는 교사가 되기 위한 것이라면, 먼저 교사인 당신 스로가 당신 자신을 가르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하워드 G. 핸드릭스의 <제2장 교육의 법칙>

 

  유능한 교사는 가르치려는 것, 즉 교육 내용을 먼저 알아야 할 뿐 아니라 가르치고자 하는 사름을 또한 알아야만 합니다. 교사는 단지 어떤 원리들을 가르치는 데만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하며, 배우는 이들에게 영향을 주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배우는 방법은 가르치는 방식이 결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교육의 법칙입니다.

  죤 밀튼 그레고리가 그의 고전적 저서인 『가르침의 일곱 가지 법칙(The seven Laws of Teaching)』에서 보여 주는 교육 과정의 법칙이 이 법칙들의 기초가 되는 개념입니다. 이 교육의 법칙은 배우는 자가 스스로 행동하도록 격려하고 지도하는 것을 포함하는데, 이것이 중요한 표현입니다.

  사실 우리는 교육의 법칙을 다음과 같이 부연하여 정의할 수 있습니다.

  "교사는 배우는 자의 자발적인 활동을 자극하고 지도해야 하며, 대체로 학생들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쉽게 가르쳐 주지 말며, 그렇게 노력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교사로서 당신이 무엇을 행하느냐가 아니라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의는 교사와 학습자 모두를 다음과 같은 역할에 귀착시킵니다. "교사는 주로 격려하는 자요, 동기 유발자입니다......  그는 연주자가 아니라 연주자들을 자극하고 지도하는 지휘자일 뿐입니다. 반면에 학습자는 주로 연구자이며, 발견자요, 실행자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침에 대한 결정적인 요건은 교사가 무엇을 한다거나 얼마나 잘 하느냐가 아니라, 학생이 무엇을 얼마나 잘하게 되느냐입니다.


  나의 큰딸 바브는 달라스 교향악단의 수석 바이올린 연주자로부터 바이올린 교습을 받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독주회가 시작 되었을 때 누가 연주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향학단의 수석 바이올린 연주자가 아니라 바로 내 딸 바브였습니다. 나는 수석 바이올린 연주자가 "신사 숙녀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이 바이올린 솜씨를 보여드리기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결코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그에게 교습비를 지불하고 있었던 것은 그가 연주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로 하여금 바브를 가르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내가 알기 원했던 것은 그가 나의 딸에게 가르쳐 준 결과로 바브가 얼마나 바이올린을 잘 연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훌륭한 교사는 자신이 하는 일에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하고 있는 것에 관심을 갖습니다.

  플라톤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한 나라에서 존중받는 것은 바로 그곳에서 성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가르치는 것들 중에서 무엇을 중요시합니까? 당신은 학생들이 당신의 모든 질문에 바른 답변을 하며, 기독교의 모든 진리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을 느낍니까? 실제로 그러한 것이 당신을 만족시킵니까?


  신학교에서 학생들 중 몇몇은 자신들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에 대하여 내가 조금도 칭찬하지 않는 것 때문에 종종 당황합니다. 그들은 나에게서 칭찬을 듣기 위해 대답하는 중간 중간에 언제나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섞어서 말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잘했네. 그런데 그것이 제군의 생활에서 어떻게 역사하는가?"라고 묻습니다.

  우리의 교육 제도에 있어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지식의 축적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 교사들은 학생이 자기 머리 속에 얼마나 많은 것을 집어 넣어 두었다가 시험지 위에 얼마나 많이 옮겨놓을 수 있느냐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학교 복도에서 나는 시험 중인 한 학생을 만났습니다. 그는 시험 공부에 무척 열중에 있는 듯이 보였는데, 내가 그의 어깨 위에 팔을 얹고 격려의 말을 해주려 하자 그 학생은 "교수님, 저에게 손대지 마세요! 그러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새어나가게 된단 말예요."라고 농담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것은 교육이 아닙니다.

  대학 강의실에는 전혀 와 본 적이 없는 많은 사람들도 훌륭하게 교육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은 지식적으로는 모두 다 알지 못하겠지만 자신들이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실천가들이며, 하나님은 이들을 자신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하워드 G. 핸드릭스의 <제3장 행동의 법칙>


  전달자로서의 당신의 임무는 학생들에게 감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강한 영향을 주는 것이며, 또한 그들로 단지 깨닫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교육은 너무나도 소극적입니다. 이러한 것은 기독교 신앙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역사이며, 또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독교의 힘을 의지해 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태도는 "태초에 있었듯이 이제도 영원히 있으리로다"라는 찬송에서 잘 표현됩니다. 교회와 기독교 신앙은 그들이 초래할것으로 예상되는 그 변화에 대처합니다.    

  로마서 8:29을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미리 정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얼마나 많은 변화를 거듭해야만 하겠습니까?

               

  행동의 법칙은 아래와 같은 고대 중국의 격언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교육 심리학에 있어서도 수많은 연구에 의해 확증되고 있습니다.


  나는 듣는다. 그리고 잊어 버린다.

  나는 본다. 그리고 기억한다.

  나는 행한다. 그리고 이해한다.


  나는 이러한 격언들에 한 마디 부언해 두고자 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당신이 행할 때 그 결과는 당신이 이해하는 그 이상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행할 때 당신은 또한 변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듣는 것 중 10%만 기억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잠재적일 뿐이지 실제로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사실상 우리가 듣는 것 중 10%를 기억한다면 천재에 속할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기독교 교육의 대부분이 듣기 위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 교육이 아주 비능률적인 근본 이유입니다. 만일 우리가 듣는 것에 보는 것까지 추가한다면 기억에 대한 잠재력은 50%까지 상승한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해 볼 때, 교육에 있어 시청각의 도움은 매우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각적인 것이 주가 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은 대부분이 유치원에서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교실에서 보낸 시간보다는 텔레비젼을 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이것이 대개의 추세인데, 이러한 것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텔레비젼에 나오는 것들은 매우 공상적이고 허황된 것으로서 인간의 모든 면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각과 청각이 결합되어 있는 효과 때문에 텔레비전을 계속해서 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보는 것에 의해 점차 세뇌될 수 있

습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에 행하는 것을 하나 더 추가하면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됩니까?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결합의 결과로 기억력의 비율을 9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수년간 교육 기관에서 가르쳐온 경험으로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확신할 만한 증거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하워드 G. 핸드릭스의 <제4장 전달의 법칙>

 

  말콤 뮤거릿즈(Malcolm Muggeridge)는 의사 전달에 관한한 거의 모든 책에서 공통적으로 주장되는 놀라운 특징, 즉 '의사 전달에 있어서 각자의 무느함'을 지적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나는 의사 전달 과정에 관한 85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책을 한 권 읽었는데, 만일 당신이 불면증과 같은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 보십시오.

  의사 전달이란 결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의사 전달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고 있다면 당신은 더욱 지혜를 모아 기도하고, 더 열심히 연구하며 행할 뿐 아니라, 보다 깊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울 것입니다.

  시카고에 있는 한 회사는 2백만 달러의 이익을 본 후 1년 만에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어떤 일에 종사하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회사에서는 머리핀을 생산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사람들의 머리를 보호하는 대단히 중요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겨우 머리핀이나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찮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 그 머리핀을 사용하지 않자 곧바로 그 회사는 끝장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어떠한 일에 종사하고 있는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의사를 전달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일이야말로 교사로서 우리가 존재하는 진정한 이유입니다.

               

  다음과 같은 과정을 고찰해 봅시다. 우리는 개념이나 느낌, 행동을 언어를 통하여 전달하는데, 이때에는 두 가지 곧 준비와 표현력이 요구됩니다.


  1. 준비는 타인에게 가장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하게 해주는 최상의 방편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메시지에 형식과 특징을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메시지를 적절하게 구조화시켜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메시지를 듣는 대상이 어른이냐, 아이들이냐 또는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메시지를 달리 구성해야 합니다.

  도입 부분은 청중을 사로잡을 만한 특별한 것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이때에는 질문이나 인용문, 또는 어떤 사건이나 그들의 삶에서 관심을 끌 만한 재료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2. 표현은 여러 가지 요소 가운데에서 발음, 즉 당신이 말하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말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나는 미국 북동부에서 자랐는데, 그 지방에서는 발음에 있어 세 가지 요소 곧 입술, 이, 혀의 역할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후에 나는 휫튼 대학 재학 중에 음악 개인 교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의 발음이 하도 이상해서 강의를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에 나는 교수님의 발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늘 날 나는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교수님이 내가 교수님에게 말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명확하게 발음하는 데 신경을 쏟기 시작했으며, 그제서야 비로소 학교 친구들이 나에게 "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제야 알아듣게 됐어"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워드 G. 핸드릭스의 <제5장 마음의 법칙>

 


  강렬한 영향을 주는 가르침은 머리대 머리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통한 가르침입니다. 이것이 마음의 법칙이며, 당신이 마음에 대한 성경적인 의미를 이해한다면 이 법칙이 진실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단어는 변덕스런 단어 중의 하나이면서도 감상적인 단어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이 이 단어를 정확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지만 구약 성경의 기자들은 아주 정확하게 사용했습니다. 신명기  6:4-6은 당시에 이 단어가 어떻게 쓰였는지를 보여 주는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모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마음은 전인격, 다시 말해서 지성, 감성, 의지를 의미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침의 과정은 한 인격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와 동일하게 다른 사람의 인격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입니까! 오직 지식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길을 따르는 것은 이보다 훨씬 더 어렵지만 이 길을 따르는 것이 참으로 유익합니다. 마음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삶 자체가 변화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소크라테스는 의사 전달의 본질은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라는 세 가지 개념으로 요약하였습니다. 여기서 에토스는 인격을, 파토스는 긍휼을, 로고스는 내용을 포함합니다.


 


 하워드 G. 핸드릭스의 <제6장 격려의 법칙>

 


  본 페이지 하단에 있는 상자 안에는 동기 유발에 대한 모든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이 상자는 잠겨 있지만 다행히도 나는 그 열쇠를 갖고 있습니다. 자, 우리 함께 그 안을 들여다 봅시다.                  


  내가 이 상자에서 꺼낸 첫 번째 물건은 조약돌이 들어 있는 작은 종이 봉지입니다. 이 조약돌은 일곱 살 난 한 소년이 토요일 아침에 세 시간 동안 애써 모은 것입니다. 그 아이에게 이러한 일을 하라고 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숙제로 내준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였든  간에 그 아이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당신은 그 아이가 왜 그러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이 상자에서 꺼낸 두 번째 물건은 때로 얼룩져 있으며 온통 구겨진, 아기 양육에 관한 낡아빠진 책 한 권입니다. 아내와 나는 우리 자녀 네 명을 이 책을 참고하여 길렀습니다. 아무도 이 책을 읽도록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합니까?

  다음으로 내가 상자에서 꺼낸 것은 성경 구절 암기 카드가 들어 있는 작은 꾸러미입니다. 당신은 과거에 성경 암기를 위한 프로그램을 실천해 보았습니까? 만일 그렇게 해 본적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또 당신이 그것을 하다가  중단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음 물건은 연방 정부에서 온 미국 국세청(IRS) 세금 정보에 관한 팜플렛입니다. 당신은 평소에 그 팜플렛에 깊은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한번은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핸드릭씨, 만일 당신이 이 팜플렛을 읽어 본다면 세금을 6백 달러는 절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내가 이 팜플렛을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물론 나는 그것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실제로 6백 달러 이상의 세금을 면제받았습니다.

  이제 나는 그 상자 안에서 나의 아들 빌(Bill) 이 보이스카우트와 유사한 기구인 기독교 봉사단(Christian Service Brigade) 활동을 할 때 입었던 제복 샤쓰를 꺼냅니다. 한쪽 호주머니에는 네 개의 수상 뺏지가 있는데, 뺏지 한 개의 값은 겨우 35센트에 불과하지만 이것을 얻으려고 빌이 얼마나 열심히 활동했는지 모릅니다. 이 뺏지 하나 하나가 빌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나는 동기를 유발시키는 방법에 관한 책은 모두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책들이 제시하는 효과적인 방법들은 한결같이 이 상자 안에 있는 물건들이 나타내는 소유권, 호기심, 필요를 충족시킴, 유용함, 도전, 인정, 승인과 같은 개념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하워드 G. 핸드릭스의 <제7장 준비의 법칙>



  경주자들은 시합 전에 근육을 푸는 운동을 합니다. 관현악단은 연주에 들어가기 전에 조율을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에게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제 준비의 법칙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은 선생님과 학생이 충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선생님들에게 있어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학생들이 냉담한 자세로 수업에 임한다는 점입니다.

   

  당신이 교회의 장년부에서 이사야서를 가르치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런 경우에 당신은 가르치는 데만도 60분이 걸릴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미리 예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성경공부 시간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끌기로 마음먹고 "여러분, 이사야 27장을 펴시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수업을 시작합니다. 이때 그들의 머리 속에는 즉시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사야 27장에 뭐가 있지?'

'그걸 누가 알겠어?'

'누가 그런 것에 관심이나 있겠나?'

  하지만 당신은 유능한 선생일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이사야 27장의 메시지에서 말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믿고 있어서 이사야 27장을 완전히 이해해야 하며,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점차 이사야 27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끝나감에 따라  그들에게는 질문거리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가르친 이사야 27장이 그들이 살아가면서 필요로 하는 것이나 문젯거리와 연결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그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것입니다.

  일주일 후에 당신은 또다시 이런 투로 시작합니다.

  "여러분, 이사야 28장을 펴시겠습니까? "

  "이사야 28장에 무엇이 있나?"

  "그걸 누가 알아?"

  "그런 것에 누가 관심을 갖기라도 하나?"

  당신은 늘 이러한 식의 반복된 방법으로 이사야서를 가르칠 것입니다.


  더 나은 성경 공부가 되도록 하기 위해 나는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방법을 권하고 싶습니다. 즉, 주제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하는 것으로 성경 공부를 시작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일상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과 교제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자연스럽게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자연스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학습 시간이 끝날 때까지 질문에 대한 답변과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들에 대하여 해결 방법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성경을 독자적으로 혹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계속해서 연구하고자

자극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워드 G. 핸드릭스의 <기타 : 투자하기>

 

<기타 : 투자하기>


  선생인 당신의 사고력과 감정을 자극하며, 당신을 격려하여 활동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살펴본 일곱 가지 기본 법칙을 다음과 같이 글자맞추기 형식으로 제시합니다.


T 교사의 법칙(The Law of the Teacher) - 오늘 성장하기를 중단하면, 내일 가르치기를 중단해야 한다.

E 교육의 법칙(The Law of Education) - 당신의 가르침은 사람들이 배우는 법을 결정한다.

A 행동의 법칙(The Law of Activity) - 배움의 극대화는 언제나 최대한으로 참여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이다.


C 전달의 법칙(The Law of Communication) - 지식을 전해 주기 위해서는 다리를 놓아주는 일이 필요하다.

H 마음의 법칙(The Law of Heart) - 영향을 미치는 교육은 머리대 머리가 아니라, 마음대 마음이다.

E 격려의 법칙(The Law of Encouragement)) - 교육은 배우는 자가 적절한 자극을 받게 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R 준비의 법칙(The Law of Readiness) -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은 학생과 교사에게 각각 적절한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가장 효과적이다.


  위의 법칙들은 효과적인 가침을 위한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당신이 가르치는 그룹이 어떠한 연령층이든, 주제가 무엇이든, 당신이 어떠한 문화적인 배경에서 교육을 하고 있든 간에 이러한 법칙들을 당신이 이해하고 적용한다면, 학생들의 삶을 한 차원 높이는데 도움이 될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법칙들은 단지 원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실 때 원리를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인 선생으로서 성공하는 데는 이러한 법칙을 아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으로서의 당신이 인격에 달려 있으며, 당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교사로서 성공의 비결은 당신이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사용하셔서 일하게 하시는 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는 것은 당신의 생각이 새롭게 되고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분의 도구로서 당신은 기꺼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을 변화시키도록 하겠습니까? 그렇게 해야만이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참으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도와 위임이 당신의 가르침에 있어 성공을 향한 가장 큰 일보를 내딛는 것이 될 것입니다.


  어떤 선교사는 동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을 실천은 잘 하나 지식이 없고, 서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은 지식은 많지만 실천이 부족한 자들로 묘사하였습니다. 서유럽의 교회들 가운데에도  너무나 많은 이들이 실천의 결핍으로 인하여 볼품 없고 미발육된 자세로 축 늘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잔소리로 들려서는 안됩니다.

  '발전을 위한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습니까?'

  발전하려면 대가가 들게 마련입니다. 효과적인 가르침은 백화점의 염가 세일과는 다릅니다.  만일 당신이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당신은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하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효과적인 교육의 성취는 적은 결심과 제한된 시간만 투자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타인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자 한다면 분명히 이 책의 내용대로 실천하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행동에 옮기는 것, 바로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쓴 목적입니다.



 


출처 : 앵커한인교회는 마음을 녹이는 해빙
글쓴이 : dav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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